[리에쿠로] 감기 (전력60분)

 

 

 

 

 * * *

 

 

 평범했던 방 안 공기가 물에 젖은 솜 덩어리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천장이 절반 정도 푹 꺼진 듯 답답한 공간으로 변질되어간다. 방은 잘못한 것이 없는 자리였다. 다만 그 안에 존재하는 사내의 존재가 쿠로오의 전신을 둔중한 울림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하이바 리에프.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이 큰 것이 아니었음에도 호흡이 막힌 듯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른다. 마치 독감에 걸린 것처럼, 온 몸이 열뜨고 숨들이 아팠다.

 

 

 "……쿠로상, 괜찮아요?"

 

 

 자신 앞으로 뻗어진 곧은 손가락을 과민반응 하듯 쳐냈다. 본능이 알려줄 자신의 존재를 리에프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태연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손을 건넬 수 없다. 힘에 부쳐 이대로 입을 열면 발정하는 숨 덩어리들이 터져나올 것 같아 부러 입술을 짓씹으며 버텼다. 주장이나 되어서는 부 활동 후배에게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들킨 것도 모자라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본래의 정체까지 들킨다면 그 수치심에 정말로 죽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열꽃이 피어오르는 얼굴을 떨궈 감추고, 급한대로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퍼런 매트를 주워 몸을 감쌌다. 그리고는 점점 가까워지는 그에게 무언 속 간절함을 담은 손사래짓을 했다. 가, 제발, 못 본척 지나가줘라.

 

 

 "……쿠로상 혹시,"

 "………."

 "오메가에요?"

 

 

 아……. 자신도 모르게 맥이 풀린 멍한 목소리가 나왔다. 참았다 터트린 얇은 숨결은 자신이 느끼기에도 열이 오른 달큰함이 배어있었다. 어느새 코 앞에서 마주하게된 리에프는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과 함께 느린 시선으로 얼굴을 훑어내렸다. 괜한 긴장감에 까끌한 침을 꿀꺽 삼켜낸 울대 안이 목감기에 걸린 듯 쓰려왔다. 바싹 말라오는 건조한 혀는 하얀 알약을 통째로 씹어댄 것처럼 텁텁한 맛이 느껴져 쓰다. 들끓는 속도 모르고 리에프는 그 얼굴을 자신의 어깨에 턱하니 걸쳤다. 순간 볼에 스친 하얀 머리칼이 예민한 촉감을 문지르는 탓에 되려 제 몸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약, 없었죠."

 "………."

 "내 감기약인 줄 알고 잠깐 가져갔었어요. 약봉지에 담긴 것까지 모양이 하도 똑같아서."

 "너, 당장, 이리 돌려놔."

 "싫어요."

 "좋은,말로 할때…, 가져와."

 "정 뭣하면 내 감기약이라도 드시던가."

 

 

 

 결코 여리지 못한 굳쎈 목덜미가 물린 것은 한순간이었다. 목 뒤에는 백색 짐승의 잇자국이 깊게 새겨질 터였다. 그 깊은 자국이 난 길을 따라 파다한 알파의 향이 자신을 파고들어, 한낱 오메가인 몸은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것 마냥 높은 열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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