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쿠로] 죽음 (전력 60분)

*악마X신부

 

 

 

 

 * * *

 

 

 아득하게 넓은 하늘이 짙은 주홍색 선혈로 물들어버린 늦저녁이었다. 커다란 유리창 사이로 조각난 붉은 빛줄기가 고요한 예배당을 다소곳하게 비추고 있었다. 무대의 조명이 중앙으로 집약되듯 점차 모여든 빛이 예배당 중심에 꼿꼿이 서 있는 검은 사내를 점차 붉으스름하게 밝혔다. 목 끝까지 채워진 단추, 단정한 검은 사제의 옷을 입은 채 얌전히 묵주를 쥐고 있는 단단한 손. 기도를 올리는 듯 사내는 한동안 어떤 움직임도, 소리도 내지 않았다. 성인(聖人)처럼 평화로웠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가올 무언가를 피하려는듯 자꾸만 긴장이 서렸다. 감긴 눈은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담아 뜰 생각을 못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홀로 파르르 떨어댔다. 곧이어 신과의 엄숙한 대화가 마무리 지어진 듯 굳게 다물어 팽팽한 눈꺼풀을 조심스레 들어올리면, 오늘도 어김없이 피로 물든 십자가가 보였다.

 

 가시 면류관에 열매같은 피가 맺혔다. 토막난 채 새어들어오는 빛줄기와 비교도 되지 않는 뚜렷한 붉은색, 예배당 중앙에 걸린 십자가가 그 빛에 흠뻑 젖어들어간다. 곧이어 들리는 적나라한 비소. 이 까무러칠 상황은 비웃음의 주인이 벌인 지독스러운 장난이었다.

 

 

 "안녕, 오늘도 왔네요."

 

 

 ㅡ끈질기게. 마지막 말에 숨김 없는 서늘함이 담겼다. 더이상은 용인할 수 없다는 절대자의 선고와 비슷한 무게감이었다. 덕분에 쿠로오는 하마터면 구명줄을 붙잡듯 손에 꾹 쥐고 있던 묵주를 볼썽사나운 소리와 함께 떨어트릴 뻔 하였다. 몇 일동안 이어진 질 나쁜 장난은 볼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역겨운 장면이었다. 사람이었다면 죄를 뉘우치게 하여 이 자리에서 신에게 용서을 빌고 교화를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 놀음놀이의 당사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자신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환상인가, 또는 신이 내린 시험? 온갖 번뇌로 가득한 머릿속에 순간 깊은 음성이 박혔다. 코 앞으로 성큼 다가온 백색 망령의 서느런 목소리였다.

 

 

 "ㅡ있잖아요."

 "………."

 "테츠로. 아니, 쿠로상. 죽음이 그렇게 무서워요?"

 "……그 쪽이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장난질은 이쯤 하고,"

 "매번 찾아오지 말라 경고해도 끈질기네요, 짜증나게. 신이 정말 죽음으로부터 당신을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신을 모독하지마. 그는 망령 따위인 네 입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 내가 망령이면 신은 실재하지도 않는 망상이야."

 

 

 순간 강하게 조인 목줄기에 쿠로오가 숨이 끓는 소리를 내었다. 끄으, 윽……. 말도 되지 않는 악력에 붙잡힌 숨통 위로 선명한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꺾이거나, 터져버릴 것 같았다. 으윽, 커헉. 손을 뻗어 그의 악력을 제지하려 했지만 잡히는 것 없이 더욱 괴로워질 뿐이었다. 보이는 것은 뱀처럼 살기어린 눈동자 뿐. 영민한 독사가 아둔한 짐승을 사냥하듯, 혹은 가르치듯 날카롭고 여유로운 시선이었다. 본능적인 몸부림 때문에 손에 쥐었던 묵주는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지 오래였다. 끝까지 수그러들지 않고 죄여오던 힘이 일순 빠져나가자 쿠로오는 목 끝까지 잠구었던 단추를 다급하게 뜯어내고 뛰쳐나오는 거센 호흡을 가감없이 내뱉었다. 그 모습에는 엄숙함도, 거룩함도 일체 보이지 않았다. 신자이기보다 죽음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살고 싶었죠."

 "커헉, 허억, 헉……."

 "내 손에 죽어도 쿠로상은 신의 곁으로 갈텐데 왜 그랬어요. 얌전히 죽어버리지."

 "너,는. 대체 누구……."

 "신은 없어요.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또한 없어. 쿠로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아득한 정신을 고쳐잡기 위해 쿠로오는 고개를 두어번 좌우로 저었다. 호흡이 통하지 않아 어둑했던 시야가 점차 붉었던 예배당의 색을 입었다. 마치 긴 악몽에서 깬 듯 현실감 없는 장면이었다.

 

 눈 앞에 있던 질 나쁜 망령의 백색 머리칼이 검은색이 되고, 녹빛 눈동자는 꾸덕한 갈색으로 변했다. 그는 타락한 혼령의 모습으로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쿠로오는 그 광경에 소스라치도록 놀라 예배당 의자위로 꼴사납게 넘어졌다. 검게 늘어져 몰아쉬는 숨은 죽음의 냄새가 가득 배여 독한 악취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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