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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 100일

2015. 3. 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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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

2014. 12. 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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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쿠로] 마피아 (전력 60분)

 

 

 

 

* * *

 

 

 평평하던 초록 그물망이 경쾌한 타격음 후에 큰 물결로 출렁거렸다. 곧이어 아득히 멀어져 떨어지는 하얀 골프공. 배불뚝이 남자의 웃음소리 뒤로 여러 아부들이 터져나왔다. 회장님, 나이스샷입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회장이라 불린 자는 자신의 몸만큼 기름진 웃음을 지으며 캐디의 엉덩이를 노골적으로 주물럭거렸다. 이게 다 미스 캐디 덕분이지. 어이구, 예뻐라 예뻐. 남자의 손을 뿌리치려는 캐디의 움직임을 주위 부하직원이 제지시켰다. 회장님 심기 건드려 좋을 게 뭐 있나, 하는 무언의 협박. 어쩔줄 모르고 꿈지럭거리던 여자는 수치심으로 달아오른 얼굴에 결국 억지 웃음을 띄우고 만다.

 

 놀고들 있네. 아주 개판이야 개판. 리에프는 어느새 마지막 개피밖에 남지 않은 담뱃갑을 보며 좀이 쑤시는 것을 느꼈다. 명령을 내려야할 자신의 직속 선배인 쿠로오는 그저 조용히 앞만 주시하고 있을 뿐이다. 인원도 충분하고, 무기도 챙겨왔으며 타이밍도 괜찮은 듯 보이는데 무엇이 그를 망설이게 하는지 잘난 옆태를 뚫어져라 응시해도 도통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사람이다, 생각하며 다시 담배를 피우려는 순간 조용한 명령이 떨어졌다. 우루루 뛰어가는 막내들의 발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놀라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 개피를 놓치고 말았다. 아씨……, 돗대인데! 부루퉁한 얼굴로 쿠로오를 쳐다보니 아무 말 없이 턱짓으로 가, 한다. 예고 좀 해주세요 선배……. 여전히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옆에 놔두었던 골프채를 집어들고서 발걸음을 옮긴다.

 

 궁시렁궁시렁, 어린애가 불평하듯 투덜거리던 입이 곧 무거운 일자로 꾹 다물어졌다. 곧이어 느릿하게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여유로히 새어나오는 강자의 목소리. 확연한 우위선점. 재미없는 수평선을 그렸던 입술이 절로 말려 올라간다.

 

 

 "회장님ㅡ, 재미 좋아? 우리랑도 한판 칩시다. 응?"

 

 

 딱! 정확히 중앙을 맞은 골프공이 멀리 날아갔다. 딱,딱,딱. 곧이어 들리는 둔탁한 타격음은 공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등뼈를 후려맞은 회장 쪽 부하직원들이 괴로운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저쪽에서 고용한 경호원들은 이미 발을 묶어둔 상태였다. 형식적인 웃음소리가 만발했던 골프장이 순식간에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가 되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덜덜 떨고 있는 캐디에게 리에프는 입고 있던 정장 자켓을 벗어 덮어주었다. 언뜻 보면 상냥한 행동이었으나, 입밖으로 나온 말은 역시나 날이 서있었다.

 

 

 "아가씨. 이거 짭새한테 찌르면 안돼? 예쁜 얼굴 갈리기 싫으면 닥치고 있는게 좋아. 알겠지?"

 

 

 울며 끄덕이는 여자를 뒤로하고 리에프는 골프채를 등 뒤로 돌려 늦은 준비운동 자세를 취하고서 회장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배 나온 회장은 겁에 질린 채로 횡설수설에 정신이 없어 그렇지 않아도 보기 좋지 않은 꼴이 더욱 눈꼴시렸다. 진짜,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좆같이 생겼네 이 아저씨. 불쾌해진 리에프가 혈흔이 묻은 골프채 머리로 회장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느긋함이 골프채 끝에 몰려 다독이는 모습처럼 보인터라, 그 언밸런스함에 남자는 순간 마지막 긴장이 모두 풀려 몸이 축 내려 앉았다.

 

 

 "깔끔하게 한방에 뒈집시다."

 

 

 퍼억ㅡ. 도끼로 내려찍듯 정확히 관자놀이를 가격한 골프채가 바닥에 떨어졌다. 육중한 몸뚱이도 따라 느리게 쓰러지고 만다. 끝까지 존나게 못생겼네.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척이다 담배가 모두 떨어졌음을 상기시킨 리에프가 막내의 담배 개피를 빌려 후련한 끽연을 했다. 골프장 벽 너머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쿠로오에게 죽은 회장의 머리카락을 잡아 들어올리고 손가락으로 브이 표시를 보여주었다. 돌아오는 것은 단단히 솟아오른 가운데 손가락과 왠지 모를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시체들 알아서 정리하고 돌아와라."

 

 

 그리고는 홀로 휑하니 자리를 떠난다. ……뭐야, 왜 저러시지.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리에프를 감싸안았다. 

 

 문득 자신의 잠자리 옆에서 들렸던 오래된 잠꼬대가 생각났다. 그만, 미안해, 내가, 그만해……. 동시에 겹쳐지는 쿠로오의 뒷모습. 최근 그가 직접 손을 쓴 적이 없다는 사실 또한 생각의 수면 위로 상기되었다. 어느새 잔뜩 좁혀진 미간은 엉켜버린 실타래마냥 좀처럼 풀어질 줄 몰랐다. 기분 나쁜 의심이 발 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와 리에프를 긁어댔다.

 

 

 자신의 정장을 걸친 캐디는 아직까지 바들바들 떨고 있다.

 

 

 "……저년까지 데리고 와."

 

 

 먼저 떠난 쿠로오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 * *

 

 

 "선배, 뭐하십니까?"

 

 

 쿠로오의 방문 틈으로 빼꼼 얼굴만 내민 리에프가 괜히 의미 없는 말을 걸었다. 하이바냐. 아직 다 태우지도 않은 담배 개피를 재떨이에 짓이겨버리고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 기분 나쁘진 않았다. 리에프는 샐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뭐 가져 왔게요."

 "뭐야, 뭘 가져왔길래 그렇게 신이 났어?"

 "하하, 한번 보실래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뒤에 숨겼던 여자를 끌고 들어와 방바닥에 던지듯 놓아주었다. 아직 골프복에서 옷도 갈아입지 못한 캐디였다. 두 눈이 안대에 가려진 채 두려움으로 장님처럼 바닥을 더듬는 모습이 가련한 꼴이긴 했다. 쿠로오의 얼굴을 살피니 당황스러움을 애써 죽이는 듯 보였다. 리에프는 조용히 의심의 눈초리를 숨기고 쿠로오에게 잘 갈려진 칼을 건넸다.

 

 

 "이년이 우리가 하는 짓을 다 봤거든요. 뒤가 구리면 안되니까, 죽이려구요."

 "……거기서 죽였으면 될걸 뭐하러 데리고 오기까지 했어."

 "선배 요즘 한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감 떨어지실까봐 선배 생각해서 일부러 귀찮은거 참고 끌고왔는데."

 "………."

 "오랜만에 선배 칼솜씨도 보고 싶어서요. 자, 여기."

 

 

 쿠로오는 건넨 칼을 받아들 생각도 않고 잠시 긴장을 꿀꺽 삼키더니 이내 뒷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들었다. 그 모습에 불쾌한 분노를 느낀 리에프가 망설임 없이 여자의 복부에 깊숙히 칼을 꽂아 넣었다. 여린 살갗이 찢어지는 적나라한 소리와 솟구치는 피가 바닥에 흘러 넘쳤다. 날카롭게 내질렸던 여성의 비명소리는 뱃속을 쑤셔 박는 칼날에 갈려 죽어갔다. 손가는대로 마구 찔러대며 흘끗 쿠로오를 쳐다보자 그의 얼굴은 숨김 없는 메스꺼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씨발, 왜 저런 병신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어금니를 꽉 깨물며 혈흔 범벅이 되어 비릿한 쇠냄새를 풍기는 칼을 다시 쿠로오에게 건넸다. 받아, 제발 받아요.

 

 

 "아직 안 죽었어요. 죽여요. 선배가 죽여주세요."

 "윽, 우욱……."

 "저 처음 들어왔던 날 기억하십니까? 선배가 다짜고짜 배때지에 칼부터 쑤셔 넣었잖아요. 이정도도 못 버티면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그 때 그 냉정함은 다 어디로 갔어요? 선배 왜 그래. 저년 하나 직접 못 죽여요?"

 

 

 배에서 빼낸 칼을 이번엔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여자가 발작하듯 팔다리를 허공에 쭉 뻗더니 고통에 사지를 비틀며 덜덜 떨었다. 그만. 거슬리는 단어가 쿠로오의 목소리를 입은 채로 뱉어졌다. 입 안을 짓씹으며 다리를 도려낼듯 칼질에 박차를 가했다. 그만, 하이바. 떨리는 목소리를 숨길 여력도 없는 듯 꼴나사운 음성이 다시 한번 리에프를 거북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칼을 잡은 손을 멈추지 않자 이내 비겁한 총성이 방 안을 울렸다. 정확히 여자의 심장을 꿰뚫은 총에서 아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자는 움직임이 없었다. 확실하고 깔끔한 죽음. 그래, 이제 와서 깨끗한 척을 하시겠다?

 

 

 "병신."

 "………."

 

 

 시간이 갈수록 약함을 내보이는 자신의 우상이 안타까운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 평생을 뒤에서 받쳐주며 같은 행보를 밟을 생각이었는데. 기괴한 모습으로 죽어버린 여자의 몸뚱이 위를 훌쩍 넘어 방문을 열자 총성에 모여든 부하들이 무슨 일이냐며 열 오른 질문을 해댄다. 입을 다물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대신 방문을 큰 소리가 나도록 세게 닫았다. 움찔하는 부하들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아, 얘들아. 우리 형님이 병신이 되었다. 병신 머저리 새끼가……. 속으로 뱉어낸 문장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지어졌다. 형용할 수 없이 솟구치는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곧이어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 쿠로오가 별일 아니라며 휘휘 손을 저어 해산을 시켰다. 뒤로 숨긴 반대쪽 손에는 평소 습관처럼 손에 쥐고 있던 싸구려 라이터의 유리조각이 듬성듬성 박혀 피가 가득 맺혀있는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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