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쿠로] 무제 (조각글)

*마피아AU

 

 

 

 

 * * *

 

 

 격전이 일어난 곳은 찾는 사람이 없어 폐허가 되어버린 허름한 당구장이었다. 둥그런 공들이 굴러다녀할 당구대 위에는 그 대신 피 칠갑이 되어버린 검은 정장을 입은 시체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터라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공기는 피 비린내와 시체 썩는 냄새가 섞여 더욱 고약한 모습으로 진동했다. 공간은 죽음만이 가득해 한 없이 정적이었다. 고요함의 중심에는 툭툭, 하고 죽은 남자들을 건드리는 리에프의 구두 소리 만이 존재했다. 이리저리 채이는 시체들은 자신의 발 움직임에 따라 힘 없이 움직일 뿐이다. ……다 뒤져버렸네. 종이 위로 상황 정리를 하던 리에프의 손 끝에 따분함이 묻었다.

 

 재미 없다는 듯이 느린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발 뒷쪽에 차갑고도 낯선 느낌이 닿았다. 정확히는 예민한 아킬레스 건 중앙. 살짝 고개만 뒤로 돌려보니 엉망이 된 바닥에 엎드린 채 간신히 총을 잡고 있는 한 사내가 보인다. 거긴 쏴도 안 죽는데ㅡ. 여유로움이 한껏 담긴 웃음을 지으며 조롱하는 투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조그만 권총 하나 격발할 힘 조차 없어보이는 불쌍한 꼴이었기에. 보기 흉하게 덜덜 떨리는 손이 우습다. 겨냥 당한 발을 들어 망설임 없이 그 손 위에 올리고 짓이겨댔다. 뼈가 서로 엇갈리며 우득거리는, 꽤 아픈 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비명 한번 지르지 않는다. 그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윽윽거리는 둔중한 울림만을 내뱉을 뿐. 평소 같으면 무심한 얼굴과 함께 권총으로 뒤통수를 터트렸을텐데, 오늘은 죄다 재미없는 사체들 뿐이어서 그런지 유일한 생존자인 이 남자에게 괜한 흥미가 동했다.

 

 

 "운이 안 좋네, 당신."

 

 

 장난감을 갖고 놀듯이 유연하게 움직이던 구둣발이 결국 사내의 손가락 몇개를 뒤로 꺾어 부러트렸다. 그제야 큰소리를 내는 입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어두운 공간에 동화된 검은 머리칼을 휘어잡고 뒤로 젖히자 예상보다 사나운 얼굴이 보였다. 잔뜩 구겨진 표정이지만 왠지 모를 질서가 담겨있는 얼굴이었다. 탈선이라고는 엿볼 수 없는 곧은 일직선, 흔히 말하는 충신과 같은 모습. 그 전체적인 형상이 리에프의 악취미에 불을 당겼다. 비뚤어진 수평선마냥 위태롭게 닫힌 입술에서 살려달라는 애원어린 말이 듣고 싶어졌다. 자신에겐 별 의미도 없는 절실한 희망고문 후 싹 돌변하여 가차없이 죽여버리는 일. 생명을 배신당한 절망감이, 그때 보이는 마지막 표정이 끝내주거든.

 

 

 "죽,이려면, 어서, 죽여……."

 

 

 그런데 이 사내는 자신의 생명을 그리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괜한 객기로 부리는 허세가 아닌, 바람 새는 웃음과 함께 살인을 도발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아아, 이러면 재미 없잖아 형씨. 눈 높이를 맞추기 위해 다리를 굽히고 좀 더 자세히 그 얼굴을 살폈다. 총구 하나 심장에 제대로 겨눌 기력조차 없었던 주제에 핏발 선 눈은 죽을 줄 모르고 더 날을 세운다. 그 독살스러운 모습에 어이 없는 실소가 터져나왔다. 목숨 소중한 줄 알아야지, 아무리 파리 같은 명줄이라 해도 말야.

 

 

 "언제까지 도발할 수 있나 한번 보자고."

 

 

 움켜잡은 머리칼을 뒤로 잡아 당겨 그 반동으로 열린 입에 딱딱하고 차가운 총을 들이밀었다. 놀라긴 했는지 살짝 당황스러운 빛이 생긴 상에 멈추지 않고 달칵, 레버를 젖혔다. Ready, shot! 장난스러운 음성과 함께 철컥거리며 소름 돋는 소리가 났으나 탄약이 터지는 작은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다. 허억ㅡ, 잔뜩 긴장한 숨을 들이마신 사내의 가슴팍이 불규칙하게 들썩거린다. 표독스럽고 단단했던 얼굴에 점점 금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게 무섭긴 하지? 이제야 재미를 느낀 리에프가 연속으로 두번을 더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 철컥 철컥. 하지만 이번에도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다. 사내는 몸 전체로 숨을 쉬듯 전신을 꼴사납게 헐떡거렸다. 잔뜩 날이 섰었던 눈은 맥이 풀린 듯 갈피를 잃고 두려움에 점점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총알이 어디에 몇 발이나 들어 있는지 몰라."

 "허억, 윽, 으읍……."

 "당신 운이 좋으면 목숨을 구걸할 때까지 살아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목구멍이 터져 죽겠지."

 "………."

 "빨리 애원하는 게 나을걸. 심장을 관통당하면 깔끔하게 즉사라도 하지, 목구멍이 터지면 당신 피비린내에 질식해서 뒤진다고."

 

 

 흐으, 으……. 간청하는 방법을 모르는지 사내는 그저 쉴새없이 떨리는 몸으로 리에프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덜덜 떨리는 턱 때문에 입 안의 총구과 이가 닿아 딱딱거리는 불쌍한 소리를 냈다. 힘겹게 손을 들어 총을 빼내려는 모습에 곧바로 방아쇠를 당기자 철컥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사내가 또 한번 큰 들숨을 먹었다. 흐으, 윽……. 구강을 가득 채운 권총 때문에 입술 끝에서 투명한 타액이 질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라, 순간 든 생각에 리에프는 계속 눈높이를 맞추던 다리를 펴고 일어나 사내를 내려다 보았다. 장난스레 웃으며 총을 고간에 위치시키고 사내의 머리통을 자신 쪽으로 밀어 당기자 포르노에서나 보던 구강 성교의 행위와 비슷한 꼴이 되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권총을 물고 있는 모습이 영락 없는 블로우잡이다. 손에 쥔 무기를 천천히 앞 뒤로 움직이자 타액이 총 기둥 위에 좀 더 넓은 모양으로 퍼졌다. 사내도 지금 어떤 상황을 연출시키고 있는지 아는 듯 수치심에 괴로운 표정이었다.

 

 

 "좆 물고 있는 것 같아."

 "………."

 "와, 이거 어쩌지. 나 좀 흥분한 것 같은데. 진짜로 물려줄까?"

 

 

 조금은 경박스러울 정도로 터지는 웃음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시끄럽게 했다. 그만큼 하이바 리에프는 이 상황에 쾌락보다 더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당신, 이름이 뭐야? 안 가르쳐주려나. 손가락에 걸린 방아쇠에 괜히 한번 더 힘을 주었다. 역시나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고 사내는 다급하게 뭉게진 발음으로 첫 대답을 했다. 쿠,로오, 테츠로……. 그 목소리에 느리게 총을 빼내어주자 모든 힘이 빠진 듯 사내의 상체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휘청였다. 쿠로오, 라고 했던가. 리에프는 쿠로오가 다시 자세를 잡기도 전 식은땀이 맺힌 그의 이마에 총구를 대고 마지막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여전히 발사되지 않는 총탄. 어라ㅡ, 빈 총이었네. 어린 아이 같이 해맑은 미소가 그려진 리에프의 얼굴과 달리 쿠로오는 얼이 나가 공허한 표정이었다. 두려움을 배신당한 분노. 긴장 뒤에 몰아쳐오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그가 큰 소리를 냈다. 너, 이, 개자식……! 그러나 성이 난 음성은 뒷 목을 내려친 리에프의 손에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운 좋네, 쿠로씨. 끝까지 살아남다니 말야."

 

 

 

 즐거운 목소리로 뱉은 문장과 달리, 종이 위로 상황을 정리하던 리에프의 손은 망설임 없이 '전원 사망'이라는 글자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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