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쿠로] 죽음 (전력 60분)

*마피아AU

 

 

 

 

 * * *

 

 

 "ㅡ그래서, 즉결처분하라는 명령이……."

 

 

 더이상 이어지지 못한 뒷말은 둔탁한 타격음으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리에프는 감히 자신의 애인 위에 죽음을 언급하는 하부 조직원의 뺨 위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즉결처분? 웃기지도 않은 소리. 미처 가시지 못한 화가 속에서 들끓었다. 표출할 곳만 있다면 주위 시선 신경쓰지 않고 이대로 미친듯 날뛰고 싶었다. 위에서 전해진 사실은 밑바닥 시절부터 함께한 제 애인이 타 조직의 프락치였다는 것이었고, 그 결과로 한치의 인정도 용납되지 않는 죽음을 말하는 명령이 떨어진 탓이었다.

 

 씨발, 진짜, 개소리 하지 말라 해……. 분노는 곧 초조함으로 변해 뭉툭한 손톱이 입술 안에서 뚝뚝 물어뜯겼다. 자신의 괜한 화풀이로 나가떨어진 조직원이 비틀거리며 죄송하다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형님들께서……. 잔뜩 움츠린 목소리로 우물거리는 그 모습에도 짜증이 났다. 다시 버럭 화를 내려다 이내 엉망이 된 머릿속을 진정시키듯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 빙빙 돌렸다. 뭔가 잘못되었다. 위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말들은 리에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상부에서 죽이고자하는 그는, 누구보다 가까이 있던 자신의 동료였고 연인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내 눈으로 직접 보아야지.

 

 

 "형님들께 갈테니 앞장서라."

 "리에프 형님, 그게,"

 "방해하지 말고 문 열라고 새끼야!!"

 

 

 결국 참지 못한 발이 먼저 나가버렸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회의실의 철문이 고장난 기계처럼 녹슨 소리를 내며 늘어졌다. 설득시켜야해, 형님들을 설득해야……. 하지만 성급하게 내딛은 발걸음은 그 긴박함과 어울리지 않게 금방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리에프, 마침 잘 나왔다. 그 개새끼가 냄새를 맡은건지 벌써 지 조직으로 꽁무니를 뺐단 말이지. 여기 있는 놈들 다 따라와. 다 조져버리러 갈 참이니까."

 

 

 뒤에서 들리는 조직원들의 우렁찬 대답에 다릿심이 풀릴 것 같았다. 쿠로상, 아니죠. 초점 잃은 눈은 어느새 총을 챙기는 자신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검은 다리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 * *

 

 

 정신을 차려보니 쿠로오와 자신은 서로 총구를 겨냥한 채 맞닿아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주요 표적이 되었던 탓인지 이미 수차례 찔린 상처로 그의 몸은 새빨간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죽지 않은 눈빛에 리에프는 속에서 울컥 솟은 그리움과 진한 원망을 느꼈다. 이렇게 그대로인데, 왜 쿠로상은 거기에 있어요. 둘을 경계삼아 나눠진 조직원들이 그 긴장감에 숨을 죽였다. 쿨럭, 피를 한가득 토해낸 쿠로오가 그의 상황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빈 손을 들어 잠시 긴장을 제지했다. 잠깐, 리에프.

 

 

 "총을 잘못 들었다. 잠깐 바꿀 시간 좀 주겠어?"

 

 

 무언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쿠로오는 들어올린 빈손으로 주위를 경계하더니, 이내 리에프의 이마에 겨누어졌던 총을 떨어트리고 뒷주머니에서 새로운 총을 꺼냈다. 탄환이 다 떨어졌으니 새로운 총으로 바꿔 든 생각처럼 보였다. 진심이구나, 날 죽일 생각이야. 씁쓸한 분노를 씹으며 총구 뒤의 레버를 꾹 눌러 당겼다. 순식간에 식은 화가 체념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철컥, 하는 소리는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났다. 잠시나마 엉망이 된 그의 몸을 걱정하며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면 살 가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자신에게 자조적인 웃음이 지어졌다. 대체 몇 년동안 병신이었던거지, 나는.

 

 

 "리에프."

 "……쿠로오, 이 개새끼야."

 "원망해라."

 

 

 타앙ㅡ. 격발된 총은 쿠로오의 것이었고, 총알에 관통당한 머리 또한 그의 것이었다. 둘을 에워싸던 긴장감이 작은 폭발음과 함께 무너짐과 동시에 서로의 조직원들은 다시 벌레들처럼 징그럽게 얽히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점차 붉게 물들어가는 얼굴을 흰색 와이셔츠로 닦아내던 리에프가 마지막 유품이라도 챙기듯 쿠로오의 총을 손에 쥐었다. 혈흔을 빼면 말끔하기 그지없는 새 총. 철컥, 바람 빠진 소리를 뱉어낸 그것은 아무런 격발음도 들리지 않는 텅 빈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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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쿠로] 죽음 (전력 60분)

*악마X신부

 

 

 

 

 * * *

 

 

 아득하게 넓은 하늘이 짙은 주홍색 선혈로 물들어버린 늦저녁이었다. 커다란 유리창 사이로 조각난 붉은 빛줄기가 고요한 예배당을 다소곳하게 비추고 있었다. 무대의 조명이 중앙으로 집약되듯 점차 모여든 빛이 예배당 중심에 꼿꼿이 서 있는 검은 사내를 점차 붉으스름하게 밝혔다. 목 끝까지 채워진 단추, 단정한 검은 사제의 옷을 입은 채 얌전히 묵주를 쥐고 있는 단단한 손. 기도를 올리는 듯 사내는 한동안 어떤 움직임도, 소리도 내지 않았다. 성인(聖人)처럼 평화로웠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가올 무언가를 피하려는듯 자꾸만 긴장이 서렸다. 감긴 눈은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담아 뜰 생각을 못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홀로 파르르 떨어댔다. 곧이어 신과의 엄숙한 대화가 마무리 지어진 듯 굳게 다물어 팽팽한 눈꺼풀을 조심스레 들어올리면, 오늘도 어김없이 피로 물든 십자가가 보였다.

 

 가시 면류관에 열매같은 피가 맺혔다. 토막난 채 새어들어오는 빛줄기와 비교도 되지 않는 뚜렷한 붉은색, 예배당 중앙에 걸린 십자가가 그 빛에 흠뻑 젖어들어간다. 곧이어 들리는 적나라한 비소. 이 까무러칠 상황은 비웃음의 주인이 벌인 지독스러운 장난이었다.

 

 

 "안녕, 오늘도 왔네요."

 

 

 ㅡ끈질기게. 마지막 말에 숨김 없는 서늘함이 담겼다. 더이상은 용인할 수 없다는 절대자의 선고와 비슷한 무게감이었다. 덕분에 쿠로오는 하마터면 구명줄을 붙잡듯 손에 꾹 쥐고 있던 묵주를 볼썽사나운 소리와 함께 떨어트릴 뻔 하였다. 몇 일동안 이어진 질 나쁜 장난은 볼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역겨운 장면이었다. 사람이었다면 죄를 뉘우치게 하여 이 자리에서 신에게 용서을 빌고 교화를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 놀음놀이의 당사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자신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환상인가, 또는 신이 내린 시험? 온갖 번뇌로 가득한 머릿속에 순간 깊은 음성이 박혔다. 코 앞으로 성큼 다가온 백색 망령의 서느런 목소리였다.

 

 

 "ㅡ있잖아요."

 "………."

 "테츠로. 아니, 쿠로상. 죽음이 그렇게 무서워요?"

 "……그 쪽이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장난질은 이쯤 하고,"

 "매번 찾아오지 말라 경고해도 끈질기네요, 짜증나게. 신이 정말 죽음으로부터 당신을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신을 모독하지마. 그는 망령 따위인 네 입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 내가 망령이면 신은 실재하지도 않는 망상이야."

 

 

 순간 강하게 조인 목줄기에 쿠로오가 숨이 끓는 소리를 내었다. 끄으, 윽……. 말도 되지 않는 악력에 붙잡힌 숨통 위로 선명한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꺾이거나, 터져버릴 것 같았다. 으윽, 커헉. 손을 뻗어 그의 악력을 제지하려 했지만 잡히는 것 없이 더욱 괴로워질 뿐이었다. 보이는 것은 뱀처럼 살기어린 눈동자 뿐. 영민한 독사가 아둔한 짐승을 사냥하듯, 혹은 가르치듯 날카롭고 여유로운 시선이었다. 본능적인 몸부림 때문에 손에 쥐었던 묵주는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지 오래였다. 끝까지 수그러들지 않고 죄여오던 힘이 일순 빠져나가자 쿠로오는 목 끝까지 잠구었던 단추를 다급하게 뜯어내고 뛰쳐나오는 거센 호흡을 가감없이 내뱉었다. 그 모습에는 엄숙함도, 거룩함도 일체 보이지 않았다. 신자이기보다 죽음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살고 싶었죠."

 "커헉, 허억, 헉……."

 "내 손에 죽어도 쿠로상은 신의 곁으로 갈텐데 왜 그랬어요. 얌전히 죽어버리지."

 "너,는. 대체 누구……."

 "신은 없어요.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또한 없어. 쿠로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아득한 정신을 고쳐잡기 위해 쿠로오는 고개를 두어번 좌우로 저었다. 호흡이 통하지 않아 어둑했던 시야가 점차 붉었던 예배당의 색을 입었다. 마치 긴 악몽에서 깬 듯 현실감 없는 장면이었다.

 

 눈 앞에 있던 질 나쁜 망령의 백색 머리칼이 검은색이 되고, 녹빛 눈동자는 꾸덕한 갈색으로 변했다. 그는 타락한 혼령의 모습으로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쿠로오는 그 광경에 소스라치도록 놀라 예배당 의자위로 꼴사납게 넘어졌다. 검게 늘어져 몰아쉬는 숨은 죽음의 냄새가 가득 배여 독한 악취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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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쿠로] 제복 (전력60분)

*부제 : 개

 

 

 

 

 * * *

 

 
 쿠로오 테츠로가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좁디 좁은 사각형의 벽면이었다. 겨우 제 몸만을 수용하는 공간은 형무소 독방을 닮았고, 자신은 그곳에 수감된 죄수와도 같은 꼴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재인식 시켜주듯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팔에서 쩔그렁하는 낡은 쇳소리가 났다. 동시에 쇠사슬에 치인 빈 그릇이 커다란 벌레들의 시체가 거뭇한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바닥을 짧게 가로질러 굴렀다. 애완견의 사료를 담을 때나 쓰이는, 개 밥그릇이었다.

 

 씨발. 대체 날 뭘로 보는거야. 무릎을 꿇고 있던 터라 저리기 시작한 다리를 움직여 힘겹게 고쳐앉으니 또 한번 쩔그렁, 소리가 난다. 목재가 낡아 바닥에서 피어오른 나무 조각에 쓸린 맨 다리가 짐승이 할퀸듯한 자국으로 엉망이 되었다. 쓰린 아픔과 수치심에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오는 입술이 험상궂게 일그러진다. 이런 엽기적인 일을 벌일만한 작자는 자신의 빌어먹을 연인놈 밖에 없었다. 하ㅡ, 정신나간 새끼.

 

 이별을 고했던 몇 주 전, 찌질할 정도로 울며 자신에게 매달렸던 허여멀건한 머리통이 생각났다. 쿠로상, 가지마요. 나는 쿠로상이 없으면 안돼ㅡ. 순수해서 더욱 무서웠던 절실한 애원을 가까스로 뿌리쳐 드디어 그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평화가 아닌, 단지 잠복기를 거쳐 비로소 오늘 그 본모습을 드러냈을 뿐이었다. 더욱 처절해진 집착의 모습을 하고서.

 

 

 어디선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을 렌즈를 쿠로오는 본능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이었기에 천장 귀퉁이에 박혀있는 둥그런 카메라 눈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노려보자 협소한 공간에 큰 음성이 울렸다. 아이와 같은 커다란 웃음 소리였다.

 

 

 "일어났어요, 쿠로상?"

 "……리에프. 이게 뭐하는 짓이야."

 "너무 오래 자서 조금 무서웠다구요. 늦게 일어나셨네."

 "너, 이자식……!"

 "나 괜히 걱정했잖아요. 설마 쿠로상이 그정도 약에 죽을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

 

 

 기가 막혀 수 많은 음절들이 그저 입 안에서 뭉게져버렸다. 그나마 밖으로 빼낸 것은 공허한 헛웃음 뿐이었다. 자신의 연인, 정확히는 연인이었던 하이바 리에프가 이곳과는 다른 어딘가에서 저를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불을 보듯 뻔히 그려져 아무것도 입혀지지 못한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인정이 없어 차가운 그의 백색 머리칼이 닿은 것처럼 순간 한기가 느껴졌다.

 

 

 어라, 추워요? 기다려요.

 치지직ㅡ. 날개 달린 벌레가 죽기 전 내뱉는 소리와도 비슷한 기계음이 볼썽사납게 찢어졌다. 곧이어 들려오는 급박한 발소리. 문턱에서 잠시 멈춘 발이 성큼, 자신의 앞으로 다가왔다. 끼익 늘어진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고 공간은 자신과 리에프 단 둘만으로 가득 찼다. 

 

 리에프는 헐레벌떡 차오르는 숨도 고르지 않은 채 손에 들린 우스꽝스러운 옷을 보여주었다. 뿌듯한 얼굴, 부드럽게 말려 올라간 입가의 호선. 예쁘죠? 내가 만들었어요.

 

 몸통에서 뻗어나온 팔 소매는 두개가 아닌, 네개였다.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을 빤히 내려다 보더니 눈대중으로 대충 옷을 맞춰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미소. 가히 미친 사람의 모습이었다.

 

 

 "쿠로상 생각하면서 만든 옷이에요. 하이바 리에프 표 제복."

 "……당장 치워, 이 정신나간 새끼야."

 "마음에 안 들어요? 아, 목줄도 채워야 하는거였어. 그래야 정말 내 개에게 어울리는 제복인데 말이에요. 깜빡했다."

 

 

 멀리 굴러가지도 못한 개 밥그릇이 리에프의 손에 들린 채 자신의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처음 겪는 수모와 공포로 떨구어진 고개가 단 한개의 손가락에 이끌려 미세한 떨림과 함께 점점 위로 들렸다. 그 끝은 주인이 애완견을 대하듯 부드러운 동시에 한 치의 여지도 없는 권위적인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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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쿠로] 감기 (전력60분)

 

 

 

 

 * * *

 

 

 평범했던 방 안 공기가 물에 젖은 솜 덩어리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천장이 절반 정도 푹 꺼진 듯 답답한 공간으로 변질되어간다. 방은 잘못한 것이 없는 자리였다. 다만 그 안에 존재하는 사내의 존재가 쿠로오의 전신을 둔중한 울림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하이바 리에프.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이 큰 것이 아니었음에도 호흡이 막힌 듯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른다. 마치 독감에 걸린 것처럼, 온 몸이 열뜨고 숨들이 아팠다.

 

 

 "……쿠로상, 괜찮아요?"

 

 

 자신 앞으로 뻗어진 곧은 손가락을 과민반응 하듯 쳐냈다. 본능이 알려줄 자신의 존재를 리에프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태연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손을 건넬 수 없다. 힘에 부쳐 이대로 입을 열면 발정하는 숨 덩어리들이 터져나올 것 같아 부러 입술을 짓씹으며 버텼다. 주장이나 되어서는 부 활동 후배에게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들킨 것도 모자라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본래의 정체까지 들킨다면 그 수치심에 정말로 죽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열꽃이 피어오르는 얼굴을 떨궈 감추고, 급한대로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퍼런 매트를 주워 몸을 감쌌다. 그리고는 점점 가까워지는 그에게 무언 속 간절함을 담은 손사래짓을 했다. 가, 제발, 못 본척 지나가줘라.

 

 

 "……쿠로상 혹시,"

 "………."

 "오메가에요?"

 

 

 아……. 자신도 모르게 맥이 풀린 멍한 목소리가 나왔다. 참았다 터트린 얇은 숨결은 자신이 느끼기에도 열이 오른 달큰함이 배어있었다. 어느새 코 앞에서 마주하게된 리에프는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과 함께 느린 시선으로 얼굴을 훑어내렸다. 괜한 긴장감에 까끌한 침을 꿀꺽 삼켜낸 울대 안이 목감기에 걸린 듯 쓰려왔다. 바싹 말라오는 건조한 혀는 하얀 알약을 통째로 씹어댄 것처럼 텁텁한 맛이 느껴져 쓰다. 들끓는 속도 모르고 리에프는 그 얼굴을 자신의 어깨에 턱하니 걸쳤다. 순간 볼에 스친 하얀 머리칼이 예민한 촉감을 문지르는 탓에 되려 제 몸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약, 없었죠."

 "………."

 "내 감기약인 줄 알고 잠깐 가져갔었어요. 약봉지에 담긴 것까지 모양이 하도 똑같아서."

 "너, 당장, 이리 돌려놔."

 "싫어요."

 "좋은,말로 할때…, 가져와."

 "정 뭣하면 내 감기약이라도 드시던가."

 

 

 

 결코 여리지 못한 굳쎈 목덜미가 물린 것은 한순간이었다. 목 뒤에는 백색 짐승의 잇자국이 깊게 새겨질 터였다. 그 깊은 자국이 난 길을 따라 파다한 알파의 향이 자신을 파고들어, 한낱 오메가인 몸은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것 마냥 높은 열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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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쿠로] 무제 (조각글)

*마피아AU

 

 

 

 

 * * *

 

 

 격전이 일어난 곳은 찾는 사람이 없어 폐허가 되어버린 허름한 당구장이었다. 둥그런 공들이 굴러다녀할 당구대 위에는 그 대신 피 칠갑이 되어버린 검은 정장을 입은 시체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터라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공기는 피 비린내와 시체 썩는 냄새가 섞여 더욱 고약한 모습으로 진동했다. 공간은 죽음만이 가득해 한 없이 정적이었다. 고요함의 중심에는 툭툭, 하고 죽은 남자들을 건드리는 리에프의 구두 소리 만이 존재했다. 이리저리 채이는 시체들은 자신의 발 움직임에 따라 힘 없이 움직일 뿐이다. ……다 뒤져버렸네. 종이 위로 상황 정리를 하던 리에프의 손 끝에 따분함이 묻었다.

 

 재미 없다는 듯이 느린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발 뒷쪽에 차갑고도 낯선 느낌이 닿았다. 정확히는 예민한 아킬레스 건 중앙. 살짝 고개만 뒤로 돌려보니 엉망이 된 바닥에 엎드린 채 간신히 총을 잡고 있는 한 사내가 보인다. 거긴 쏴도 안 죽는데ㅡ. 여유로움이 한껏 담긴 웃음을 지으며 조롱하는 투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조그만 권총 하나 격발할 힘 조차 없어보이는 불쌍한 꼴이었기에. 보기 흉하게 덜덜 떨리는 손이 우습다. 겨냥 당한 발을 들어 망설임 없이 그 손 위에 올리고 짓이겨댔다. 뼈가 서로 엇갈리며 우득거리는, 꽤 아픈 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비명 한번 지르지 않는다. 그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윽윽거리는 둔중한 울림만을 내뱉을 뿐. 평소 같으면 무심한 얼굴과 함께 권총으로 뒤통수를 터트렸을텐데, 오늘은 죄다 재미없는 사체들 뿐이어서 그런지 유일한 생존자인 이 남자에게 괜한 흥미가 동했다.

 

 

 "운이 안 좋네, 당신."

 

 

 장난감을 갖고 놀듯이 유연하게 움직이던 구둣발이 결국 사내의 손가락 몇개를 뒤로 꺾어 부러트렸다. 그제야 큰소리를 내는 입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어두운 공간에 동화된 검은 머리칼을 휘어잡고 뒤로 젖히자 예상보다 사나운 얼굴이 보였다. 잔뜩 구겨진 표정이지만 왠지 모를 질서가 담겨있는 얼굴이었다. 탈선이라고는 엿볼 수 없는 곧은 일직선, 흔히 말하는 충신과 같은 모습. 그 전체적인 형상이 리에프의 악취미에 불을 당겼다. 비뚤어진 수평선마냥 위태롭게 닫힌 입술에서 살려달라는 애원어린 말이 듣고 싶어졌다. 자신에겐 별 의미도 없는 절실한 희망고문 후 싹 돌변하여 가차없이 죽여버리는 일. 생명을 배신당한 절망감이, 그때 보이는 마지막 표정이 끝내주거든.

 

 

 "죽,이려면, 어서, 죽여……."

 

 

 그런데 이 사내는 자신의 생명을 그리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괜한 객기로 부리는 허세가 아닌, 바람 새는 웃음과 함께 살인을 도발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아아, 이러면 재미 없잖아 형씨. 눈 높이를 맞추기 위해 다리를 굽히고 좀 더 자세히 그 얼굴을 살폈다. 총구 하나 심장에 제대로 겨눌 기력조차 없었던 주제에 핏발 선 눈은 죽을 줄 모르고 더 날을 세운다. 그 독살스러운 모습에 어이 없는 실소가 터져나왔다. 목숨 소중한 줄 알아야지, 아무리 파리 같은 명줄이라 해도 말야.

 

 

 "언제까지 도발할 수 있나 한번 보자고."

 

 

 움켜잡은 머리칼을 뒤로 잡아 당겨 그 반동으로 열린 입에 딱딱하고 차가운 총을 들이밀었다. 놀라긴 했는지 살짝 당황스러운 빛이 생긴 상에 멈추지 않고 달칵, 레버를 젖혔다. Ready, shot! 장난스러운 음성과 함께 철컥거리며 소름 돋는 소리가 났으나 탄약이 터지는 작은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다. 허억ㅡ, 잔뜩 긴장한 숨을 들이마신 사내의 가슴팍이 불규칙하게 들썩거린다. 표독스럽고 단단했던 얼굴에 점점 금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게 무섭긴 하지? 이제야 재미를 느낀 리에프가 연속으로 두번을 더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 철컥 철컥. 하지만 이번에도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다. 사내는 몸 전체로 숨을 쉬듯 전신을 꼴사납게 헐떡거렸다. 잔뜩 날이 섰었던 눈은 맥이 풀린 듯 갈피를 잃고 두려움에 점점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총알이 어디에 몇 발이나 들어 있는지 몰라."

 "허억, 윽, 으읍……."

 "당신 운이 좋으면 목숨을 구걸할 때까지 살아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목구멍이 터져 죽겠지."

 "………."

 "빨리 애원하는 게 나을걸. 심장을 관통당하면 깔끔하게 즉사라도 하지, 목구멍이 터지면 당신 피비린내에 질식해서 뒤진다고."

 

 

 흐으, 으……. 간청하는 방법을 모르는지 사내는 그저 쉴새없이 떨리는 몸으로 리에프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덜덜 떨리는 턱 때문에 입 안의 총구과 이가 닿아 딱딱거리는 불쌍한 소리를 냈다. 힘겹게 손을 들어 총을 빼내려는 모습에 곧바로 방아쇠를 당기자 철컥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사내가 또 한번 큰 들숨을 먹었다. 흐으, 윽……. 구강을 가득 채운 권총 때문에 입술 끝에서 투명한 타액이 질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라, 순간 든 생각에 리에프는 계속 눈높이를 맞추던 다리를 펴고 일어나 사내를 내려다 보았다. 장난스레 웃으며 총을 고간에 위치시키고 사내의 머리통을 자신 쪽으로 밀어 당기자 포르노에서나 보던 구강 성교의 행위와 비슷한 꼴이 되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권총을 물고 있는 모습이 영락 없는 블로우잡이다. 손에 쥔 무기를 천천히 앞 뒤로 움직이자 타액이 총 기둥 위에 좀 더 넓은 모양으로 퍼졌다. 사내도 지금 어떤 상황을 연출시키고 있는지 아는 듯 수치심에 괴로운 표정이었다.

 

 

 "좆 물고 있는 것 같아."

 "………."

 "와, 이거 어쩌지. 나 좀 흥분한 것 같은데. 진짜로 물려줄까?"

 

 

 조금은 경박스러울 정도로 터지는 웃음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시끄럽게 했다. 그만큼 하이바 리에프는 이 상황에 쾌락보다 더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당신, 이름이 뭐야? 안 가르쳐주려나. 손가락에 걸린 방아쇠에 괜히 한번 더 힘을 주었다. 역시나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고 사내는 다급하게 뭉게진 발음으로 첫 대답을 했다. 쿠,로오, 테츠로……. 그 목소리에 느리게 총을 빼내어주자 모든 힘이 빠진 듯 사내의 상체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휘청였다. 쿠로오, 라고 했던가. 리에프는 쿠로오가 다시 자세를 잡기도 전 식은땀이 맺힌 그의 이마에 총구를 대고 마지막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여전히 발사되지 않는 총탄. 어라ㅡ, 빈 총이었네. 어린 아이 같이 해맑은 미소가 그려진 리에프의 얼굴과 달리 쿠로오는 얼이 나가 공허한 표정이었다. 두려움을 배신당한 분노. 긴장 뒤에 몰아쳐오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그가 큰 소리를 냈다. 너, 이, 개자식……! 그러나 성이 난 음성은 뒷 목을 내려친 리에프의 손에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운 좋네, 쿠로씨. 끝까지 살아남다니 말야."

 

 

 

 즐거운 목소리로 뱉은 문장과 달리, 종이 위로 상황을 정리하던 리에프의 손은 망설임 없이 '전원 사망'이라는 글자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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