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빙] 무제 (조각글)

 

 

 

 

 * * *

 

 

 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발 끝에 채이는 모래 바람에 뿌얘진 시야를 손을 들어 휘휘 내저었다. 당장 길거리로 내쫓길 꼴이라 어쩔 수 없이 향한 공사판이었지만 첫인상부터가 영 텁텁해 좋지 않다. 커다란 손으로 간신히 정리한 시야에는 자신보다는 작지만 덩치 좋은 장정들이 어깨 위에 하나 둘 그들의 몸만한 돌덩이들을 이고 땀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모래 날리는 건조한 주위 환경과 다르게 다들 자신의 체액에 절어 푹 젖은 꼴이었다.

 

 으으, 완전 최악. 아츠시는 장정들이 흘리는 땀이 구정물이라도 되는 것 마냥 불쾌한 감정을 한치의 여과없이 얼굴 위로 드러냈다. 유쾌하지 못한 광경들을 구겨진 표정으로 지나친 후 배정 받은 자리에 도착하니, 자신을 맞이하는 것은 그늘 아래서 태평하게 축 늘어져있는 한 사내였다. 이 시끄러운 공간 안에서도 미동 하나 없는 것이 꼭 죽어버린 시체 같다. 문득 공사판이 무수한 안전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곳이라는 지나가는 말이 상기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많건만 괜히 가까이 다가가 힘 없이 뻗은 사내의 다리를 잠든 사람을 깨우듯 먼지 묻은 운동화 끝으로 툭툭 쳐댔다. 일어나구. 첫 날부터 죽은 사람을 목격하고 시작한 노동은 불길한 징조가 아닌가하는, 일종의 미신에서 동한 행동이었다.

 

 

 "……뭐야…."

 

 

 몽롱한 표정으로 나른하게 들어올린 얼굴은 그마저도 한 쪽이 긴 앞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리쬐는 태양 빛에 눈이 부신건지, 아니면 그저 나사 하나가 빠진 몸 상태인건지 온통 초점이 엇나간 몰골이다. 대충 봐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 같았다. 새로 왔구, 히무로 타츠야가 누구야? 그 말에 사내는 술에 취한 듯한 한숨을 빼내더니 이내 툭 떨어트린 고개 끝에 웃음을 걸었다. 네가 아츠시구나아……. 비틀거리며 일어난 상체가 미처 고정되지 못해 여전히 흔들리는 채로 악수를 했다. 좀 더 가까이서 본 사내의 얼굴은 볼이 패여 수척했고, 심지어 코 밑은 헐어있기까지한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빠져나오는 숨에서는 독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계속 뭉게지는 발음. 가녀린 몸 선과 다르게 영 어울리지 않는, 넝마와도 같은 몰골이었다.

 

 

 "……그, 일은, 잘 하겠네에. 키도 크고. 덩치도 좋고…."

 "정신 좀 차리구,무로칭. 꼴사나워."

 "으응, 성격이 못 됐네, 성격이. 거기, 그냥 이것저것 나르면 되니까 알아서 해…. 아, 위에서 자재들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조심…, 하고ㅡ."

 

 

 그리고는 쓰러질 듯이 어깨를 툭툭 쳐대고는 정리되지 않아 꼬인 발걸음으로 자신 옆을 휑하니 지나친다. 불안한 걸음걸이를 따라 흔들거리는 팔 끝에는 매듭 지어진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 속이 다 비치는 투명한 비닐 안, 두꺼운 거미줄처럼 끈덕지게 달라 붙어 있는 누런색의 액체.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히무로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불안정하게 서더니 얽힌 손으로 힘겹게 비닐 봉지의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자꾸만 빗나가는지 아, 씨발, 따위의 욕지거리를 뱉던 입술이 곧 둥근 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 볼품없이 푸석한 얼굴에 순간 붉그스름한 생기가 도는 듯 했다. 아가리를 벌린 비닐 속의 기체가 바깥 모래 공기와 섞일세라 히무로는 급히 얼굴을 그 안으로 처박았다. 깊이 들이마신 호흡에 투명 비닐이 말라 비틀어지듯 그의 얼굴에 쩍하고 달라붙었다. 곧이어 길게 빼낸 날숨은 찌르르 전율하는 몸짓과 깊게 혹한 얼굴이 함께였다. 땀냄새를 풍기며 바삐 움직이는 노동자들 사이로 히무로는 혼자만의 황홀경에서 헤매이고 있다. 먼지 날리는 공사판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 쾌감으로 가득찬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을 것만 같은 야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반복적인 깊이 있는 들숨과 날숨에 히무로의 얼굴을 삼킨 비닐이 마른 육지 위 어류의 아가미처럼 헐떡였다. 흐으,흐……. 곧이어 그는 정말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 앞 불청객인 도둑고양이가 발정했을 때 터트렸던 울음과 닮은 소리였다. 그 속 끓는 얼굴은 처음에 느꼈던 찌들고 흉한 몰골과는 다르게 새로이 아츠시만의 황홀경으로 다가왔다. 

 

 

 히무로의 상이 비닐 속 누런 본드처럼 천천히, 진득하게 녹아내린다. 아츠시 자신 또한 환각 증세를 겪는 듯 어른거리는 눈동자가 모래 바람에 먹혀 온통 노랗게 침잠하는 시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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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빙] 푸른 밤

2014. 9. 12.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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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빙] 통증

2014. 8. 1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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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빙] 무제

2014. 7. 1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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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브X히무로] 모브빙썰

2014. 6. 2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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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빙] 자빙썰

2014. 5. 5.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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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흑] 황흑썰

2014. 5. 5.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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