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쿠로] DATE (전력 60분)

 

 

 

 

 * * *


 연구소에는 이름을 잃어버린 자들이 생명 없는 물 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품종 XXXXXXX, OOOOOOO…… 형식적인 걸음을 걷던 연구원이 멈춘 곳은 품종 K001117의 캡슐 앞이었다. 태초의 모습, 전라의 형상으로 기계적인 호흡을 하는 입에서 연약한 기포가 둥둥 떠올랐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수면 때문에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왠지 모를 낯익은 느낌이 들어 연구원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차트를 넘기기 시작했다. 역시나 공백인 과거의 인적사항. 의아함에 고개가 살짝 옆으로 기울어진다. 캡슐 안의 실험체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내딛은 한 발자국이 미처 바닥에 닿기도 전 일순간 잡힌 머리채에 그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나동그라진 모습으로 고개를 들자 커다란 시선이 내리꽂아진다.

 

 

 "……이 품종은, 저를 제외한 어떤 사람도 건드리지 말라고 했을텐데요."

 

 

 무심한 얼굴이 서늘한 빛을 띄었다. 리,리에프. 미안해, 죄송합니다. 바닥에 흩어진 차트 속의 종이들을 정리하고 서둘러 몸을 일으키고 꾸벅 허리 숙여 사과를 한다. 나이 어린 자신에게 존댓말까지 써가며 덜덜 떨어대는 꼴이 우스워 리에프는 소리없는 비소를 그렸다. 얼빠진 연구원이 지나간 자리에는 자신 홀로 덩그러니 남았다. 탁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불투명한 캡슐 곡면에 살짝 손을 대니 얼음장 같은 차가움만이 손 끝에 고인다. 저 안은, 추울까? 늘 붉었던 입술은 퍼렇게 질려버렸을까? 헤아릴 수 없는 예상이 유리 곡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쿠로상, 기다려요.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어."

 

 

  곱씹는 독백에서는 달큼한 맛이 났다.

 

 

 

 

 * * *

 

 

 불법 실험을 단속하기 위해 내려온 경찰들과 격렬한 육탄전을 벌이고 있는터라 늘 손에 쥐고 있었던 딱딱한 차트 대신 연구원들은 총을 들었다. 얌전하게 입은 흰 가운에 사나운 피가 튀겨 점점 붉게 물들어간다. 정적이었던 연구소에는 낯선 총성과 비명이 오고갔다. 말 그대로 처음 겪는 아비규환이었다.

 

 어지러운 공간을 손 쉽게 가로지른 리에프는 품종 K001117의 캡슐 앞에 우뚝 섰다. 가동되는 기계를 멈추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암호를 입력해 기나긴 실험의 완성품을 밖으로 꺼냈다. 깨끗한 흰 가운을 덮어주고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비틀거리는 걸음을 도와주었다. 적응이 되지 않은 탓에 멍청하게 벌려진 입술 색깔은 추위에 질려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떨고 있는 그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개어 벌어진 틈 속에 뜨거운 숨을 깊게 불어넣었다. 당황함에 뒤로 도망가는 혀를 잡아 옭아매고 온기 어린 타액을 목구멍 뒤로 넘겨주자 미처 삼키지 못한 투명액이 입꼬리 끝에서 흘러내린다. 입술의 주름을 하나하나 핥듯이 쓸어내리던 유연한 혀를 빼내고 리에프는 짐짓 해사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아으…. 아직 녹지 못한 언어는 뱉어지지 못하고 웅웅거린 채 그의 입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리에프, 상황 종결이다. 완성품은?"

 "여기, 코드번호 K001117. 이름은 쿠로오 테츠로. 이 연구소에서 가장 영민한 연구원이었습니다."

 "한명 뿐이야? 다른 건?"

 "폐사시켰습니다. 통 진전이 없더라구요. 오늘 죽은 연구원들도 모조리 아둔한 놈들 뿐이니 그대로 불태우셔도 됩니다."

 "그 긴 시간동안 나온 결과물이 단 하나뿐이라니……."

 "그만큼 질이 좋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정 물량이 달리면 복제품을 만들면 되는 것이고요. 원본을 그대로 따라가진 못하겠지만."

 

 

 흰 가운 위에 두터운 담요 하나가 더 덮어지고 덜덜 떨리던 쿠로오의 몸이 점차 진정되며 차분함을 찾아갔다. 잠시 시끄러웠던 연구소 또한 살아있는 자들의 발소리 외에 죽은 듯이 조용한 공간이 되었다.

 

 

 

* * *

 

 

 [DATE: 20xx.11.17]

 쿠로상, 오늘이에요. 드디어 그 날짜가 다가왔어.

 

 

 긴 시간의 가시를 삼킨 리에프의 목구멍에 후련한 따가움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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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쿠로] 죽음 (전력 60분)

*마피아AU

 

 

 

 

 * * *

 

 

 "ㅡ그래서, 즉결처분하라는 명령이……."

 

 

 더이상 이어지지 못한 뒷말은 둔탁한 타격음으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리에프는 감히 자신의 애인 위에 죽음을 언급하는 하부 조직원의 뺨 위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즉결처분? 웃기지도 않은 소리. 미처 가시지 못한 화가 속에서 들끓었다. 표출할 곳만 있다면 주위 시선 신경쓰지 않고 이대로 미친듯 날뛰고 싶었다. 위에서 전해진 사실은 밑바닥 시절부터 함께한 제 애인이 타 조직의 프락치였다는 것이었고, 그 결과로 한치의 인정도 용납되지 않는 죽음을 말하는 명령이 떨어진 탓이었다.

 

 씨발, 진짜, 개소리 하지 말라 해……. 분노는 곧 초조함으로 변해 뭉툭한 손톱이 입술 안에서 뚝뚝 물어뜯겼다. 자신의 괜한 화풀이로 나가떨어진 조직원이 비틀거리며 죄송하다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형님들께서……. 잔뜩 움츠린 목소리로 우물거리는 그 모습에도 짜증이 났다. 다시 버럭 화를 내려다 이내 엉망이 된 머릿속을 진정시키듯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 빙빙 돌렸다. 뭔가 잘못되었다. 위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말들은 리에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상부에서 죽이고자하는 그는, 누구보다 가까이 있던 자신의 동료였고 연인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내 눈으로 직접 보아야지.

 

 

 "형님들께 갈테니 앞장서라."

 "리에프 형님, 그게,"

 "방해하지 말고 문 열라고 새끼야!!"

 

 

 결국 참지 못한 발이 먼저 나가버렸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회의실의 철문이 고장난 기계처럼 녹슨 소리를 내며 늘어졌다. 설득시켜야해, 형님들을 설득해야……. 하지만 성급하게 내딛은 발걸음은 그 긴박함과 어울리지 않게 금방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리에프, 마침 잘 나왔다. 그 개새끼가 냄새를 맡은건지 벌써 지 조직으로 꽁무니를 뺐단 말이지. 여기 있는 놈들 다 따라와. 다 조져버리러 갈 참이니까."

 

 

 뒤에서 들리는 조직원들의 우렁찬 대답에 다릿심이 풀릴 것 같았다. 쿠로상, 아니죠. 초점 잃은 눈은 어느새 총을 챙기는 자신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검은 다리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 * *

 

 

 정신을 차려보니 쿠로오와 자신은 서로 총구를 겨냥한 채 맞닿아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주요 표적이 되었던 탓인지 이미 수차례 찔린 상처로 그의 몸은 새빨간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죽지 않은 눈빛에 리에프는 속에서 울컥 솟은 그리움과 진한 원망을 느꼈다. 이렇게 그대로인데, 왜 쿠로상은 거기에 있어요. 둘을 경계삼아 나눠진 조직원들이 그 긴장감에 숨을 죽였다. 쿨럭, 피를 한가득 토해낸 쿠로오가 그의 상황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빈 손을 들어 잠시 긴장을 제지했다. 잠깐, 리에프.

 

 

 "총을 잘못 들었다. 잠깐 바꿀 시간 좀 주겠어?"

 

 

 무언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쿠로오는 들어올린 빈손으로 주위를 경계하더니, 이내 리에프의 이마에 겨누어졌던 총을 떨어트리고 뒷주머니에서 새로운 총을 꺼냈다. 탄환이 다 떨어졌으니 새로운 총으로 바꿔 든 생각처럼 보였다. 진심이구나, 날 죽일 생각이야. 씁쓸한 분노를 씹으며 총구 뒤의 레버를 꾹 눌러 당겼다. 순식간에 식은 화가 체념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철컥, 하는 소리는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났다. 잠시나마 엉망이 된 그의 몸을 걱정하며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면 살 가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자신에게 자조적인 웃음이 지어졌다. 대체 몇 년동안 병신이었던거지, 나는.

 

 

 "리에프."

 "……쿠로오, 이 개새끼야."

 "원망해라."

 

 

 타앙ㅡ. 격발된 총은 쿠로오의 것이었고, 총알에 관통당한 머리 또한 그의 것이었다. 둘을 에워싸던 긴장감이 작은 폭발음과 함께 무너짐과 동시에 서로의 조직원들은 다시 벌레들처럼 징그럽게 얽히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점차 붉게 물들어가는 얼굴을 흰색 와이셔츠로 닦아내던 리에프가 마지막 유품이라도 챙기듯 쿠로오의 총을 손에 쥐었다. 혈흔을 빼면 말끔하기 그지없는 새 총. 철컥, 바람 빠진 소리를 뱉어낸 그것은 아무런 격발음도 들리지 않는 텅 빈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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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쿠로] 죽음 (전력 60분)

*악마X신부

 

 

 

 

 * * *

 

 

 아득하게 넓은 하늘이 짙은 주홍색 선혈로 물들어버린 늦저녁이었다. 커다란 유리창 사이로 조각난 붉은 빛줄기가 고요한 예배당을 다소곳하게 비추고 있었다. 무대의 조명이 중앙으로 집약되듯 점차 모여든 빛이 예배당 중심에 꼿꼿이 서 있는 검은 사내를 점차 붉으스름하게 밝혔다. 목 끝까지 채워진 단추, 단정한 검은 사제의 옷을 입은 채 얌전히 묵주를 쥐고 있는 단단한 손. 기도를 올리는 듯 사내는 한동안 어떤 움직임도, 소리도 내지 않았다. 성인(聖人)처럼 평화로웠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가올 무언가를 피하려는듯 자꾸만 긴장이 서렸다. 감긴 눈은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담아 뜰 생각을 못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홀로 파르르 떨어댔다. 곧이어 신과의 엄숙한 대화가 마무리 지어진 듯 굳게 다물어 팽팽한 눈꺼풀을 조심스레 들어올리면, 오늘도 어김없이 피로 물든 십자가가 보였다.

 

 가시 면류관에 열매같은 피가 맺혔다. 토막난 채 새어들어오는 빛줄기와 비교도 되지 않는 뚜렷한 붉은색, 예배당 중앙에 걸린 십자가가 그 빛에 흠뻑 젖어들어간다. 곧이어 들리는 적나라한 비소. 이 까무러칠 상황은 비웃음의 주인이 벌인 지독스러운 장난이었다.

 

 

 "안녕, 오늘도 왔네요."

 

 

 ㅡ끈질기게. 마지막 말에 숨김 없는 서늘함이 담겼다. 더이상은 용인할 수 없다는 절대자의 선고와 비슷한 무게감이었다. 덕분에 쿠로오는 하마터면 구명줄을 붙잡듯 손에 꾹 쥐고 있던 묵주를 볼썽사나운 소리와 함께 떨어트릴 뻔 하였다. 몇 일동안 이어진 질 나쁜 장난은 볼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역겨운 장면이었다. 사람이었다면 죄를 뉘우치게 하여 이 자리에서 신에게 용서을 빌고 교화를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 놀음놀이의 당사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자신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환상인가, 또는 신이 내린 시험? 온갖 번뇌로 가득한 머릿속에 순간 깊은 음성이 박혔다. 코 앞으로 성큼 다가온 백색 망령의 서느런 목소리였다.

 

 

 "ㅡ있잖아요."

 "………."

 "테츠로. 아니, 쿠로상. 죽음이 그렇게 무서워요?"

 "……그 쪽이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장난질은 이쯤 하고,"

 "매번 찾아오지 말라 경고해도 끈질기네요, 짜증나게. 신이 정말 죽음으로부터 당신을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신을 모독하지마. 그는 망령 따위인 네 입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 내가 망령이면 신은 실재하지도 않는 망상이야."

 

 

 순간 강하게 조인 목줄기에 쿠로오가 숨이 끓는 소리를 내었다. 끄으, 윽……. 말도 되지 않는 악력에 붙잡힌 숨통 위로 선명한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꺾이거나, 터져버릴 것 같았다. 으윽, 커헉. 손을 뻗어 그의 악력을 제지하려 했지만 잡히는 것 없이 더욱 괴로워질 뿐이었다. 보이는 것은 뱀처럼 살기어린 눈동자 뿐. 영민한 독사가 아둔한 짐승을 사냥하듯, 혹은 가르치듯 날카롭고 여유로운 시선이었다. 본능적인 몸부림 때문에 손에 쥐었던 묵주는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지 오래였다. 끝까지 수그러들지 않고 죄여오던 힘이 일순 빠져나가자 쿠로오는 목 끝까지 잠구었던 단추를 다급하게 뜯어내고 뛰쳐나오는 거센 호흡을 가감없이 내뱉었다. 그 모습에는 엄숙함도, 거룩함도 일체 보이지 않았다. 신자이기보다 죽음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살고 싶었죠."

 "커헉, 허억, 헉……."

 "내 손에 죽어도 쿠로상은 신의 곁으로 갈텐데 왜 그랬어요. 얌전히 죽어버리지."

 "너,는. 대체 누구……."

 "신은 없어요.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또한 없어. 쿠로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아득한 정신을 고쳐잡기 위해 쿠로오는 고개를 두어번 좌우로 저었다. 호흡이 통하지 않아 어둑했던 시야가 점차 붉었던 예배당의 색을 입었다. 마치 긴 악몽에서 깬 듯 현실감 없는 장면이었다.

 

 눈 앞에 있던 질 나쁜 망령의 백색 머리칼이 검은색이 되고, 녹빛 눈동자는 꾸덕한 갈색으로 변했다. 그는 타락한 혼령의 모습으로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쿠로오는 그 광경에 소스라치도록 놀라 예배당 의자위로 꼴사납게 넘어졌다. 검게 늘어져 몰아쉬는 숨은 죽음의 냄새가 가득 배여 독한 악취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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