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쿠로] 죽음 (전력 60분)

*마피아AU

 

 

 

 

 * * *

 

 

 "ㅡ그래서, 즉결처분하라는 명령이……."

 

 

 더이상 이어지지 못한 뒷말은 둔탁한 타격음으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리에프는 감히 자신의 애인 위에 죽음을 언급하는 하부 조직원의 뺨 위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즉결처분? 웃기지도 않은 소리. 미처 가시지 못한 화가 속에서 들끓었다. 표출할 곳만 있다면 주위 시선 신경쓰지 않고 이대로 미친듯 날뛰고 싶었다. 위에서 전해진 사실은 밑바닥 시절부터 함께한 제 애인이 타 조직의 프락치였다는 것이었고, 그 결과로 한치의 인정도 용납되지 않는 죽음을 말하는 명령이 떨어진 탓이었다.

 

 씨발, 진짜, 개소리 하지 말라 해……. 분노는 곧 초조함으로 변해 뭉툭한 손톱이 입술 안에서 뚝뚝 물어뜯겼다. 자신의 괜한 화풀이로 나가떨어진 조직원이 비틀거리며 죄송하다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형님들께서……. 잔뜩 움츠린 목소리로 우물거리는 그 모습에도 짜증이 났다. 다시 버럭 화를 내려다 이내 엉망이 된 머릿속을 진정시키듯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 빙빙 돌렸다. 뭔가 잘못되었다. 위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말들은 리에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상부에서 죽이고자하는 그는, 누구보다 가까이 있던 자신의 동료였고 연인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내 눈으로 직접 보아야지.

 

 

 "형님들께 갈테니 앞장서라."

 "리에프 형님, 그게,"

 "방해하지 말고 문 열라고 새끼야!!"

 

 

 결국 참지 못한 발이 먼저 나가버렸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회의실의 철문이 고장난 기계처럼 녹슨 소리를 내며 늘어졌다. 설득시켜야해, 형님들을 설득해야……. 하지만 성급하게 내딛은 발걸음은 그 긴박함과 어울리지 않게 금방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리에프, 마침 잘 나왔다. 그 개새끼가 냄새를 맡은건지 벌써 지 조직으로 꽁무니를 뺐단 말이지. 여기 있는 놈들 다 따라와. 다 조져버리러 갈 참이니까."

 

 

 뒤에서 들리는 조직원들의 우렁찬 대답에 다릿심이 풀릴 것 같았다. 쿠로상, 아니죠. 초점 잃은 눈은 어느새 총을 챙기는 자신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검은 다리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 * *

 

 

 정신을 차려보니 쿠로오와 자신은 서로 총구를 겨냥한 채 맞닿아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주요 표적이 되었던 탓인지 이미 수차례 찔린 상처로 그의 몸은 새빨간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죽지 않은 눈빛에 리에프는 속에서 울컥 솟은 그리움과 진한 원망을 느꼈다. 이렇게 그대로인데, 왜 쿠로상은 거기에 있어요. 둘을 경계삼아 나눠진 조직원들이 그 긴장감에 숨을 죽였다. 쿨럭, 피를 한가득 토해낸 쿠로오가 그의 상황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빈 손을 들어 잠시 긴장을 제지했다. 잠깐, 리에프.

 

 

 "총을 잘못 들었다. 잠깐 바꿀 시간 좀 주겠어?"

 

 

 무언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쿠로오는 들어올린 빈손으로 주위를 경계하더니, 이내 리에프의 이마에 겨누어졌던 총을 떨어트리고 뒷주머니에서 새로운 총을 꺼냈다. 탄환이 다 떨어졌으니 새로운 총으로 바꿔 든 생각처럼 보였다. 진심이구나, 날 죽일 생각이야. 씁쓸한 분노를 씹으며 총구 뒤의 레버를 꾹 눌러 당겼다. 순식간에 식은 화가 체념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철컥, 하는 소리는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났다. 잠시나마 엉망이 된 그의 몸을 걱정하며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면 살 가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자신에게 자조적인 웃음이 지어졌다. 대체 몇 년동안 병신이었던거지, 나는.

 

 

 "리에프."

 "……쿠로오, 이 개새끼야."

 "원망해라."

 

 

 타앙ㅡ. 격발된 총은 쿠로오의 것이었고, 총알에 관통당한 머리 또한 그의 것이었다. 둘을 에워싸던 긴장감이 작은 폭발음과 함께 무너짐과 동시에 서로의 조직원들은 다시 벌레들처럼 징그럽게 얽히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점차 붉게 물들어가는 얼굴을 흰색 와이셔츠로 닦아내던 리에프가 마지막 유품이라도 챙기듯 쿠로오의 총을 손에 쥐었다. 혈흔을 빼면 말끔하기 그지없는 새 총. 철컥, 바람 빠진 소리를 뱉어낸 그것은 아무런 격발음도 들리지 않는 텅 빈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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