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쿠로] 제복 (전력60분)

*부제 : 개

 

 

 

 

 * * *

 

 
 쿠로오 테츠로가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좁디 좁은 사각형의 벽면이었다. 겨우 제 몸만을 수용하는 공간은 형무소 독방을 닮았고, 자신은 그곳에 수감된 죄수와도 같은 꼴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재인식 시켜주듯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팔에서 쩔그렁하는 낡은 쇳소리가 났다. 동시에 쇠사슬에 치인 빈 그릇이 커다란 벌레들의 시체가 거뭇한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바닥을 짧게 가로질러 굴렀다. 애완견의 사료를 담을 때나 쓰이는, 개 밥그릇이었다.

 

 씨발. 대체 날 뭘로 보는거야. 무릎을 꿇고 있던 터라 저리기 시작한 다리를 움직여 힘겹게 고쳐앉으니 또 한번 쩔그렁, 소리가 난다. 목재가 낡아 바닥에서 피어오른 나무 조각에 쓸린 맨 다리가 짐승이 할퀸듯한 자국으로 엉망이 되었다. 쓰린 아픔과 수치심에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오는 입술이 험상궂게 일그러진다. 이런 엽기적인 일을 벌일만한 작자는 자신의 빌어먹을 연인놈 밖에 없었다. 하ㅡ, 정신나간 새끼.

 

 이별을 고했던 몇 주 전, 찌질할 정도로 울며 자신에게 매달렸던 허여멀건한 머리통이 생각났다. 쿠로상, 가지마요. 나는 쿠로상이 없으면 안돼ㅡ. 순수해서 더욱 무서웠던 절실한 애원을 가까스로 뿌리쳐 드디어 그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평화가 아닌, 단지 잠복기를 거쳐 비로소 오늘 그 본모습을 드러냈을 뿐이었다. 더욱 처절해진 집착의 모습을 하고서.

 

 

 어디선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을 렌즈를 쿠로오는 본능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이었기에 천장 귀퉁이에 박혀있는 둥그런 카메라 눈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노려보자 협소한 공간에 큰 음성이 울렸다. 아이와 같은 커다란 웃음 소리였다.

 

 

 "일어났어요, 쿠로상?"

 "……리에프. 이게 뭐하는 짓이야."

 "너무 오래 자서 조금 무서웠다구요. 늦게 일어나셨네."

 "너, 이자식……!"

 "나 괜히 걱정했잖아요. 설마 쿠로상이 그정도 약에 죽을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

 

 

 기가 막혀 수 많은 음절들이 그저 입 안에서 뭉게져버렸다. 그나마 밖으로 빼낸 것은 공허한 헛웃음 뿐이었다. 자신의 연인, 정확히는 연인이었던 하이바 리에프가 이곳과는 다른 어딘가에서 저를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불을 보듯 뻔히 그려져 아무것도 입혀지지 못한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인정이 없어 차가운 그의 백색 머리칼이 닿은 것처럼 순간 한기가 느껴졌다.

 

 

 어라, 추워요? 기다려요.

 치지직ㅡ. 날개 달린 벌레가 죽기 전 내뱉는 소리와도 비슷한 기계음이 볼썽사납게 찢어졌다. 곧이어 들려오는 급박한 발소리. 문턱에서 잠시 멈춘 발이 성큼, 자신의 앞으로 다가왔다. 끼익 늘어진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고 공간은 자신과 리에프 단 둘만으로 가득 찼다. 

 

 리에프는 헐레벌떡 차오르는 숨도 고르지 않은 채 손에 들린 우스꽝스러운 옷을 보여주었다. 뿌듯한 얼굴, 부드럽게 말려 올라간 입가의 호선. 예쁘죠? 내가 만들었어요.

 

 몸통에서 뻗어나온 팔 소매는 두개가 아닌, 네개였다.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을 빤히 내려다 보더니 눈대중으로 대충 옷을 맞춰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미소. 가히 미친 사람의 모습이었다.

 

 

 "쿠로상 생각하면서 만든 옷이에요. 하이바 리에프 표 제복."

 "……당장 치워, 이 정신나간 새끼야."

 "마음에 안 들어요? 아, 목줄도 채워야 하는거였어. 그래야 정말 내 개에게 어울리는 제복인데 말이에요. 깜빡했다."

 

 

 멀리 굴러가지도 못한 개 밥그릇이 리에프의 손에 들린 채 자신의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처음 겪는 수모와 공포로 떨구어진 고개가 단 한개의 손가락에 이끌려 미세한 떨림과 함께 점점 위로 들렸다. 그 끝은 주인이 애완견을 대하듯 부드러운 동시에 한 치의 여지도 없는 권위적인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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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쿠로] 감기 (전력60분)

 

 

 

 

 * * *

 

 

 평범했던 방 안 공기가 물에 젖은 솜 덩어리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천장이 절반 정도 푹 꺼진 듯 답답한 공간으로 변질되어간다. 방은 잘못한 것이 없는 자리였다. 다만 그 안에 존재하는 사내의 존재가 쿠로오의 전신을 둔중한 울림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하이바 리에프.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이 큰 것이 아니었음에도 호흡이 막힌 듯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른다. 마치 독감에 걸린 것처럼, 온 몸이 열뜨고 숨들이 아팠다.

 

 

 "……쿠로상, 괜찮아요?"

 

 

 자신 앞으로 뻗어진 곧은 손가락을 과민반응 하듯 쳐냈다. 본능이 알려줄 자신의 존재를 리에프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태연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손을 건넬 수 없다. 힘에 부쳐 이대로 입을 열면 발정하는 숨 덩어리들이 터져나올 것 같아 부러 입술을 짓씹으며 버텼다. 주장이나 되어서는 부 활동 후배에게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들킨 것도 모자라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본래의 정체까지 들킨다면 그 수치심에 정말로 죽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열꽃이 피어오르는 얼굴을 떨궈 감추고, 급한대로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퍼런 매트를 주워 몸을 감쌌다. 그리고는 점점 가까워지는 그에게 무언 속 간절함을 담은 손사래짓을 했다. 가, 제발, 못 본척 지나가줘라.

 

 

 "……쿠로상 혹시,"

 "………."

 "오메가에요?"

 

 

 아……. 자신도 모르게 맥이 풀린 멍한 목소리가 나왔다. 참았다 터트린 얇은 숨결은 자신이 느끼기에도 열이 오른 달큰함이 배어있었다. 어느새 코 앞에서 마주하게된 리에프는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과 함께 느린 시선으로 얼굴을 훑어내렸다. 괜한 긴장감에 까끌한 침을 꿀꺽 삼켜낸 울대 안이 목감기에 걸린 듯 쓰려왔다. 바싹 말라오는 건조한 혀는 하얀 알약을 통째로 씹어댄 것처럼 텁텁한 맛이 느껴져 쓰다. 들끓는 속도 모르고 리에프는 그 얼굴을 자신의 어깨에 턱하니 걸쳤다. 순간 볼에 스친 하얀 머리칼이 예민한 촉감을 문지르는 탓에 되려 제 몸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약, 없었죠."

 "………."

 "내 감기약인 줄 알고 잠깐 가져갔었어요. 약봉지에 담긴 것까지 모양이 하도 똑같아서."

 "너, 당장, 이리 돌려놔."

 "싫어요."

 "좋은,말로 할때…, 가져와."

 "정 뭣하면 내 감기약이라도 드시던가."

 

 

 

 결코 여리지 못한 굳쎈 목덜미가 물린 것은 한순간이었다. 목 뒤에는 백색 짐승의 잇자국이 깊게 새겨질 터였다. 그 깊은 자국이 난 길을 따라 파다한 알파의 향이 자신을 파고들어, 한낱 오메가인 몸은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것 마냥 높은 열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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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빙] 무제 (조각글)

 

 

 

 

 * * *

 

 

 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발 끝에 채이는 모래 바람에 뿌얘진 시야를 손을 들어 휘휘 내저었다. 당장 길거리로 내쫓길 꼴이라 어쩔 수 없이 향한 공사판이었지만 첫인상부터가 영 텁텁해 좋지 않다. 커다란 손으로 간신히 정리한 시야에는 자신보다는 작지만 덩치 좋은 장정들이 어깨 위에 하나 둘 그들의 몸만한 돌덩이들을 이고 땀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모래 날리는 건조한 주위 환경과 다르게 다들 자신의 체액에 절어 푹 젖은 꼴이었다.

 

 으으, 완전 최악. 아츠시는 장정들이 흘리는 땀이 구정물이라도 되는 것 마냥 불쾌한 감정을 한치의 여과없이 얼굴 위로 드러냈다. 유쾌하지 못한 광경들을 구겨진 표정으로 지나친 후 배정 받은 자리에 도착하니, 자신을 맞이하는 것은 그늘 아래서 태평하게 축 늘어져있는 한 사내였다. 이 시끄러운 공간 안에서도 미동 하나 없는 것이 꼭 죽어버린 시체 같다. 문득 공사판이 무수한 안전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곳이라는 지나가는 말이 상기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많건만 괜히 가까이 다가가 힘 없이 뻗은 사내의 다리를 잠든 사람을 깨우듯 먼지 묻은 운동화 끝으로 툭툭 쳐댔다. 일어나구. 첫 날부터 죽은 사람을 목격하고 시작한 노동은 불길한 징조가 아닌가하는, 일종의 미신에서 동한 행동이었다.

 

 

 "……뭐야…."

 

 

 몽롱한 표정으로 나른하게 들어올린 얼굴은 그마저도 한 쪽이 긴 앞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리쬐는 태양 빛에 눈이 부신건지, 아니면 그저 나사 하나가 빠진 몸 상태인건지 온통 초점이 엇나간 몰골이다. 대충 봐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 같았다. 새로 왔구, 히무로 타츠야가 누구야? 그 말에 사내는 술에 취한 듯한 한숨을 빼내더니 이내 툭 떨어트린 고개 끝에 웃음을 걸었다. 네가 아츠시구나아……. 비틀거리며 일어난 상체가 미처 고정되지 못해 여전히 흔들리는 채로 악수를 했다. 좀 더 가까이서 본 사내의 얼굴은 볼이 패여 수척했고, 심지어 코 밑은 헐어있기까지한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빠져나오는 숨에서는 독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계속 뭉게지는 발음. 가녀린 몸 선과 다르게 영 어울리지 않는, 넝마와도 같은 몰골이었다.

 

 

 "……그, 일은, 잘 하겠네에. 키도 크고. 덩치도 좋고…."

 "정신 좀 차리구,무로칭. 꼴사나워."

 "으응, 성격이 못 됐네, 성격이. 거기, 그냥 이것저것 나르면 되니까 알아서 해…. 아, 위에서 자재들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조심…, 하고ㅡ."

 

 

 그리고는 쓰러질 듯이 어깨를 툭툭 쳐대고는 정리되지 않아 꼬인 발걸음으로 자신 옆을 휑하니 지나친다. 불안한 걸음걸이를 따라 흔들거리는 팔 끝에는 매듭 지어진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 속이 다 비치는 투명한 비닐 안, 두꺼운 거미줄처럼 끈덕지게 달라 붙어 있는 누런색의 액체.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히무로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불안정하게 서더니 얽힌 손으로 힘겹게 비닐 봉지의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자꾸만 빗나가는지 아, 씨발, 따위의 욕지거리를 뱉던 입술이 곧 둥근 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 볼품없이 푸석한 얼굴에 순간 붉그스름한 생기가 도는 듯 했다. 아가리를 벌린 비닐 속의 기체가 바깥 모래 공기와 섞일세라 히무로는 급히 얼굴을 그 안으로 처박았다. 깊이 들이마신 호흡에 투명 비닐이 말라 비틀어지듯 그의 얼굴에 쩍하고 달라붙었다. 곧이어 길게 빼낸 날숨은 찌르르 전율하는 몸짓과 깊게 혹한 얼굴이 함께였다. 땀냄새를 풍기며 바삐 움직이는 노동자들 사이로 히무로는 혼자만의 황홀경에서 헤매이고 있다. 먼지 날리는 공사판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 쾌감으로 가득찬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을 것만 같은 야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반복적인 깊이 있는 들숨과 날숨에 히무로의 얼굴을 삼킨 비닐이 마른 육지 위 어류의 아가미처럼 헐떡였다. 흐으,흐……. 곧이어 그는 정말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 앞 불청객인 도둑고양이가 발정했을 때 터트렸던 울음과 닮은 소리였다. 그 속 끓는 얼굴은 처음에 느꼈던 찌들고 흉한 몰골과는 다르게 새로이 아츠시만의 황홀경으로 다가왔다. 

 

 

 히무로의 상이 비닐 속 누런 본드처럼 천천히, 진득하게 녹아내린다. 아츠시 자신 또한 환각 증세를 겪는 듯 어른거리는 눈동자가 모래 바람에 먹혀 온통 노랗게 침잠하는 시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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